내가만난대산

변화관리의 리더를 기리며 - 권경현
글쓴이 관리자

날짜 21.05.21     조회 177


위대한 역사도 마찬가지고 위인도 마찬가지다. 그 위대함만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고, 여러 가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립자님도 굉장히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경영자이지만 예술가의 면모도 가지고 있고, 또 철학자인가 하면 과학자의 면모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 경영자로서의 창립자님의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평가는 그가 무엇을 남겼는가를 살피는 일일 것이다. 첫 번째 유산은 당연히 ‘국내 최대, 최장수 기업, 교보생명이다. 교보생명의 역사는 46년이다. 이보다 오래된 기업이 있지만 자산이 불과 몇 조로 규모가 크지 않다. 교보생명의 자산 규모는 30조이다. 국내에 현존하는 기업 중에 주인이 바뀌지 않은 최장수 기업이면서 동시에 최대 기업이 바로 교보생명이다.

 

그렇다면 이를 있게 한 근원적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창립자님이었다. 그렇다면 그 분의 어떤 측면일까? 그것은 리더십이었다. 그럼 어떤 리더십이었나? 그것은 변화관리의 리더십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속에서 찾은 해답, 즉 그 변화관리 리더심은 또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영혼이 있는 기업의 비전>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한 가장 주용한 조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영혼이 있는 기업’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고귀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회사 역사를 간략하게 재정리할 때마다 창립자님으로부터 회사 설립과 성장 과정을 자주 듣곤 했다. 회사를 설립하기 전에 창립자님은 ‘가진 돈으로 무엇을 할까? 말죽거리의 땅을 살까?’ 많이 고민하였다. 그 땅만 사놓으면 일평생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창립자님은 몇 번씩 왔다갔다 반본하다 끝내 단념하였다.

 

당시 청년이었던 창립자님은 ‘이 나라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먼저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약소국의 설움을 딛고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원인 인적자원을 개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창안된 것이 교육보험이니 사업 목적 자체가 비전이 된 것이고, 그 비전이 변화를 겪을 때마다 굳건한 중심축이 되어준 것이다.

 

흔히 우스운 얘기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둘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은 ‘막가파’다.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런데 그 막가파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비전이 있는 사람’이다. 비전은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난관을 극복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 창립자님의 태산 같은 추진력과 변화관리 리더십의 뿌리에는 바로 그 같은 비전이 있었다.

 

<핵심과 집중의 길>

 

아무리 비전이 있어도 위대한 기업이나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업을 잘 키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두 번째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을 흔히 ‘핵심사업에 집중한다’고 하는데, 창립자님은 그것이 보험사업이었다.

 

물론 그 분에게도 외길을 벗어나게 할 만한 많은 유혹이 있었다. 교보생명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창립자님에게 금융그룹으로 확대·발전시킬 것을 권유했다. 다른 업종, 특히 은행을 인수하라는 요청이 많았는데, 내부에서도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창립자님은 외부 요청을 완강히 거절하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경영층을 크게 질타하였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자”면서 “좁게 잡고 높이 쌓아올리라”라는 말로 자신의 경영철학을 못박았고, 짐 콜린스가 주장하는 ‘고슴도치’개념을 일찍부터 강조하였다.

 

‘고슴도치’이론이란 ‘잘할 수 있는 것에만 모든 것을 집중해서 그 분야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분도 어찌 욕심이 없었겠는가? 부와 명예를 위해 재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문어발식 경영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창립자님은 “팔방미인이 아니라 전문가가 되자”, “한눈팔지 말고 곁눈팔지말고 생명보험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자”며 핵심과 집중의 길을 선택하셨다.

 

그 분의 이러한 변화관리 리더십은 IMF를 거치면서 더욱 위력을 발휘했는데, 은행 인수 등 금융그룹으로의 확장을 꾀했더라면 교보생명의 운명은 지금과는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하지만 비전에 바탕을 둔 핵심사업의 개념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변화관리 리더십의 핵심을 창립자님은 곧은 의지로 탁월하게 실천하였다.

 

<성장 파워 엔진>

 

변화관리 리더십의 또 다른 요건은 성장 엔진, 즉 ‘핵심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핵심역량이란 ‘한 기업이 경쟁에서 이기면서 남보다 앞설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말한다. 창립자님은 보험업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꿰뚫어보았다.

 

보험업은 ‘이지산업’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람 인(人)자에 종이 지(紙)자, 즉 사람과 종이로 이루어진 무형의 산업인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종이에 적어 계약이 이루어지니 결국 고객은 보험을 판매하는 사람이나 그 회사의 신용을 보고 결정하게 된다. 또한 고객이 찾아와서 자발적으로 사는 상품이 아니고 판매원이 권유해서 사는 상품이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 사업이다. 따라서 그 핵심역량은 얼마나 훌륭한 세일즈 조직을 빚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 생명보험의 성장 과정은 판매조직의 발전 과정으로 이해해도 좋을 만큼 보험업에서는 세일즈 조직이 핵심역량이고 성장 엔진이다.

 

그래서 창립자님은 회사를 세울 때부터 교육부를 만들고 동양 최대의 연수원을 짓는 등 인력양성에 최대한 투자를 하였다. 돌아가실 때까지도 늘 “사람을 잘 키우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창립자님은 특히 인력양성이 시스템화되길 원하였다. 그래서 설계사부터 주무, 총무, 영업소장, 지점장에 이르기까지 외야의 각 계층별로 ‘도입양성관리제도’를 만들고 개선·발전시키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러다 보니 교보생명이 ‘보험업계의 사관학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는데, 우리 회사에서 양성한 인력들이 다른 보험업계에 스카우트 형태로 많이 진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창립자님의 노력은 컨설팅용어로 ‘회사의 성장 엔진을 키우는 데 변화관리 리더십을 행사하였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창립자님으로부터 받은 유산을 생각해보면 최대·최장수 기업 교보생명 외에도 지식·문화인들의 자랑이 교보문고와 3개 공익재단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대한 유산은 그가 남긴 정신일 것이다.

 

짐 콜린스는 “비전 기업에는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핵심가치가 있다”고 했는데, 창립자님은 교보인들에게 그렇나 핵심가치를 남겨주었다.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은 도전정신, 세상에는 거저와 비밀이 없다는 정직과 성실의 윤리관 등이 그것이다.

 

창립자님이 자주 쓰시던 말씀 중에 “어제를 반성하고 내일을 창조하자”라는 구호가 있다. 과거로부터 기회를 얻어내고 앞을 보고 꿈을 꾸라는 의미이다. 과거의 교훈을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변화를 추구해나가되 핵심은 보존하고 발전을 자극하는 위대한 변화관리의 리더였던 신용호 창립자님. 그 분은 변화관리 리더십의 전형이며, 이론을 현실로 보여준 몇 안 되는 모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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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현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전) 교보생명 인력본부장, 기획본부장, 정책담당 전무이사, 교보생명 대표이사 사장, 교보문고 대표이사

 

 

* 본 글은 대산 신용호 선생 영면 1년을 기리며 2004년에 발간한 '내가만난 대산-세상엔 거저와 비밀이 없다'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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