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만난대산

목적은 사람이다 - 강원룡
글쓴이 운영자

날짜 19.04.29     조회 147


 

1970년쯤의 일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기 힘든 혼란과 격동의 시기에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 대표자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나는 박적희 대통령을 반대하던 사람이었는데, 정부에서는 그 모임을 막기 위해 나를 달래고 협박하기를 반복했다. 난데없이 훈장을 주는 가 하면, 또 주고 나서는 그걸 빌미로 협박을 했다. 그러다 보니 후원금을 얻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김점곤 장군이란 분과 친분이 있었는데, 그가 신용호 창립자에게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난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벌어놓은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사람인데 후원금을 선뜻 주겠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의 도움으로 우리는 모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기업인으로서 정권이 반대하는 일을 돕는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신용호 창립자님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 뒤로 몇 번의 만남이 있었는데, 내가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1980년쯤의 일이다. 어느 날 그 분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있었다. 찾아가 뵈었더니 대뜸 “나는 불교 신자입니다” 하시는 것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뜻인가? 그런데 곧 이어 이렇게 말씀하였다.

  

당신에 난 경동교회를 짓고 있었는데, 사업을 하는 기독교 교인들도 교회 건축을 위한 헌금을 선뜻 내놓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먼저 부탁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기독교 교인도 아닌데 헌금을 주겠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뜻은 이런 것이었다. 좋은 일을 하는 데는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돼서는 안 되고, 또 그런 뜻에서 돕는 것이니 앞으로도 반드시 좋은 일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목사’에게 ‘불교 신자’라면 헌금을 주는 사람,. 단 한마디로 그렇게 많은 뜻을 전하는 사람. 그리고 무시무시한 일침까지 놓을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신용호란 사람이다.

  

 

고백 1  

우리는 만나면 정치나 경제, 그리고 각자의 본업인 기업이나 종교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그는 주로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창립자님은 굉장히 무거운 분이었다. 말씀이 없으셨을 뿐만 아니라, 말 한마디에도 무게와 깊이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가벼운 대화나 활발한 토론 대신 말 한마디에 깊은 뜻을 담아내고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의 뜻을 읽어내는 그런 사이였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는 인간적으로 나를 참 많이 좋아해줬다. 그러나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건대 그는 ‘내가 더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다.

 

  

고백 2  

난 개인적으로는 그를 높이 평가하지만, 사업가로서 성공하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의 뒷받침 없이, 권력에 기대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게 기업이었다. 교육보험은 분명 획기적이고 좋은 사업이지만, 그렇다고 예외일수는 없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이 권력에 의해 혹은 권력을 발판 삼아 국책사업에 힘쓰고 있을 때, 그는 오로지 보험사업에만 힘을 쏟고 있었다. 원래 보통 사람과는 사고 자체가 다른 독특한 사람이엇지만, 다른 기업인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일을 해나가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기업인은 될 수 있으나 성공한 기업인은 될 수 없다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는 성공했다. 내가 아는 한 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성공한 기업인은 신용호 한 사람뿐이다.

 

 

잘산다는 것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스스로에게, 다른 사람에게, 신에게 묻는 질문이다. 나는 각자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잘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를, 종교인은 종교를, 기업인은 기업을, 각자 자기 분야에서 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나 다른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돈 벌고 정치 잘해서 불쌍한 사람 잘 살게 도와주고, 교육 못받는 사람 교육받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 모두 돈이 목적이다. 돈을 벌기 위해 남을 짓밟는 것은 예사고 돈을 벌기 위해 환경오염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돈을 벌기 위해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다. 행복하고 잘 사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돈만 목적인 게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신용호 창립자는 내가 아는 기업인 중에 진정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사람을 목적으로 삼은 사람이다.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배운의 길을 열고자 만든 교육보험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돈을 목적으로 삶았다면 생각조차 못했을 아이디어다. 보험의 불모지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겪게 된 온갖 역경도 돈을 목적으로 삼았다면 쉽게 포기했을 일이다. 그리고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갖게 되는 욕심과 유혹과 돈을 목적으로 삼았다면 초지일관 외길을 걸어오지 못했으리라.

  

그는 이 땅에 참 많은 것을 나누어주었다. 사회 각지에 어려운 곳이 있으면 늘 대가 없이 퍼주었고, 누가 부르기 전에 항상 먼저 찾아 나섰다. 그러기에 그는 참으로 잘 살다 간 사람이다. 그러기에 내가 마음 깊이 존경하는 사람이다. 내가 참으로 사랑한 사람이다. 그리고 너무나 그리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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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 - 미국 유니언신학대학 기독교사회윤리 석사, 미국 사회연구대학원 사회학 박사 

           원광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명예박사. 

           전) 세계종교인평화회의 공동의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평화포럼 이사장,  

           대화문화아카데미 명예이사장.

 

 

* 본 글은 대산 신용호 선생 영면 1년을 기리며 2004년에 발간한 '내가만난 대산-세상엔 거저와 비밀이 없다'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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