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본업은 진주검무 이수자, 부캐는 여러 개! 다재다능한 성지혜 선생님을 만나다 (1)
글쓴이 관리자

날짜 21.06.02     조회 130




본업은 진주검무 이수자, 부태는 여러개!  다재다능한 성지혜 선생님을 만나다(1)

 

“...진주성 성안 여인 꽃같은 그 얼굴에

군복으로 단장하니 영락없는 남자 모습

보랏빛 쾌자에다 청전모 눌러쓰고

좌중 향해 절한 뒤에 발꿈치를 들고서

박자 소리 맞추어 사뿐사뿐 종종걸음

쓸쓸히 물러가다 반가운 듯 돌아오네

하늘을 나는 선녀처럼 살짝 내려앉으니

발밑에 번쩍번쩍 가을 연꽃 피어난다...(중략)”

 

- 다산 정약용, ‘무검편증미인’ 중

 

글·사진 : 한국문화재재단 청년 문화유산 기자단 제10기 징검다리 - 김상은, 박소연 

 

 

강인함과 유연함의 공존, 진주검무

 

유교사상을 근본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 여성들, 그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았던 기생들이 주가 되어 지내는 제향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바로 논개와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의병을 위로하는 <의암별제>입니다. 이때 올리는 헌무가 <의암별제>의 꽃, 진주검무인데요. 진주시는 매년 5월에 열리는 진주논개제에서 <의암별제>를 봉행하고 특별한 진주검무 공연을 선보이며, 현재까지 진주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진주검무의 오랜 흔적은 1780년 장인어른의 초대로 진주에 내려와 우연히 검무를 보고 감동한 정약용의 시 ‘무검편증미인’과 구한말 시인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후 고종 시절 궁중 무희로 활약한 진주의 최순이(1892~1969) 선생이 1910년 진주로 돌아와 검무를 전승하면서 역사적 고증이 더욱 뚜렷해졌는데요. 당시 8명의 무원이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아 진주팔검무로 불렸으며, 마침내 1967년 1월 국가무형문화재 제 1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진주검무 이수자 성지혜님을 만나다

 

최근 ‘본캐(본래 캐릭터)’와 ‘부캐(보조 캐릭터)’라는 단어가 현대인들 사이에서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본캐’에 집중하여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는 것 대신 게임처럼 다양한 ‘부캐’를 키우며 나의 새로운 가지를 뻗어 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삶을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이죠.

 

성지혜 이수자님은 바로 이 ‘부캐’라는 단어의 의미를 완벽하게 정의하는 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민속무용학과를 전공하고 1999년 진주검무를 처음 접하고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진주검무보존회에서 이수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국립무형유산원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무용예술 강사로,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에서는 안무가로, 최근에는 책 <춤추는 농사꾼 이윤석>의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고성오광대 보유자 이윤석 선생님의 덧배기춤 무보를 정리한 저자가 되는 등 무형문화재 이수자에 그치지 않고 진주검무 이수자, 무용예술 강사, 안무가, 집필자라는 다양한 부캐를 보유하고 활동 중인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예술가입니다.

 

자신의 ‘본캐’는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성지혜’라고 말씀하신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진주검무 이야기, 무형문화재 이수자이자 창작자로서의 고민, 그리고 선배에 대한 존경심과 후배에게 들려주는 조언 등 여러 이야기를 열심히 담아보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볼까요.

 

 

 

Q1. 어릴 적부터 춤을 추셨다고 하셨는데, 진주검무와의 첫만남이 궁금합니다. 어떤 것이 계기가 되어 진주검무 이수를 결심하셨나요?

 

 처음 시작은 초등학교 4학년 발레부에서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도 발레를 계속했지만 가정사가 어려워지면서 발레를 그만두었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저에게 못해주셨던 게 미안했는지 하고 싶은 말을 편지에 적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춤을 너무 추고 싶다고 적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새로 부임한 무용선생님의 주도로 무용부에도 들고 일본 고등학교의 초청을 받아서 무용공연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우연히 접했던 부채춤과 한국무용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무용은 사교육으로 많이 시작하는데 저는 공교롭게도 공교육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며 특기자 전형으로 경상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저희 학과가 한국무용 특성화된 민속무용학과였거든요. 문화재 선생님들을 모시고 수업을 진행했는데, 당시 진주검무 보유자셨던 고(故) 정금순 선생님께 지도를 받게 되었죠. 의정부시 무용단에 있다가 조교를 하러 다시 경상대로 돌아갔는데, 평생교육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셨던 고(故) 성계옥 선생님께 진주검무를 배우게 되었어요. 200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집중을 하자 다짐하면서 진주검무 보존회에서 이수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  11살 때 학교 발레 공연 중 참새 역할을 맡았던 모습

 

Q2. 진주 지역은 진주대첩과 논개 이야기 등 남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요. 검무 중에는 유일하게 국가무형문화재에 등재되기도 했는데 다른 검무와는 다른 진주검무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진주검무는 역사가 깊어요. 특히 1800년대 진주교방에서 활발하게 연행되었는데, 이는 정현석의 <교방가요>에 잘 드러나요. 또 1871년 정약용 선생님이 장인어른의 부탁으로 진주에 내려갔을 때, 촉석루에서 기녀들이 추는 검무를 보고 감동을 받아 쓴 시인 <무검편증미인>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미 일찍부터 진주교방에서는 칼춤을 추었던 역사적인 기록이 있었던 것이죠. 본격적인 진주검무의 전승은 선상기로 궁중에 들어간 최순이가 진주기녀에게 전수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최순이는 1918년부터 진주 기생 조합에서 후배 양성을 했습니다.

1966년 무형문화재 보고서에는 “진주검무는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전통춤으로 예술적인 면이 높이 평가된다.”(김천흥, 박헌봉, 유기룡:1967) 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이와 같이 진주검무는 원형의 보존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모두 인정받으며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됩니다. 무는 본디 2인 혹은 4인이 연행하는 춤이나 진주검무는 8명이 춤을 추어 ‘팔검무’라고도 부르는데요. 진주검무는 유일하게 8명이 추고, 무용수가 두 줄로 마주보고 서서 추는 대무 형식의 춤이랍니다. 또, 진주검무는 의상부터 ‘전복(戰服)’이라고 해서 무사들이 입는 복장을 하고, 순국 정신이 깃들어 있는 춤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1대 무형문화재로 8분이 모두 지정되었고, 전승자였던 최순이 선생님이 살아계셨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해요.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 7종목의 춤 중에서 제일 먼저 1967년 1월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로 지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Q3. 무용수, 안무가, 예술 강사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는데 이수자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경제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기도 한데,그때마다 ‘의욕’을 깨워주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  진주검무 유영희, 김태연 보유자

 1대, 2대 문화재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3대 예능보유자이신 유영희, 김태연 선생님께 지도받아 12년도에 이수자가 되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이수자로서의 소중함은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수자가 되고 나서야 마음가짐에 변화가 생겼죠.

 

14년도에 우즈베키스탄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재외동포를 위한 무형문화유산 전승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3주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우리나라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는 고려인들에게 진주검무를 가르치고 마지막 날에 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사실 그들은 한국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아요. 조부모 세대가 전한 한국 문화를 맛보는 정도의 경험 밖에는 없죠. 그런데도 반짝이는 눈 안에서 열정과 춤에 대한 진심을 볼 수 있었어요. 계속 배우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그들의 간절함을 보면서 되려 진주검무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전공자들은 매 순간 함께하다보니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가르침의 과정에서 역으로 진주검무의 가치를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수자라고 해서 자만하지 않고 소중함을 잃지 않고 초심을 지키며 중도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Q4. 진주검무 이수자, 무용예술 강사, 안무가 등 다양한 이력에 최근 ‘작가’를 추가하셨습니다. 공동저자로 참여하신 문화유산 총서 시리즈 <춤추는 농사꾼 이윤석>이 얼마 전 발간되었는데요. 직접 춤을 추던 사람에서 인간문화재의 삶과 무보를 기록해보니 어떠셨나요?

 

고성 오광대 기록을 하면서 사실 제 인생 공부를 제일 많이 했어요. 전혀 다른 분야를 경험하고 공부하면서 어떻게 보면 제가 저 자신을 검무라는 틀에 가두고 제한을 두어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자로 참여하게 된 것은 2008년 석사 학위를 위한 「황무봉 춤 예술 연구」를 집필한 것이 첫 단추가 되었어요. 고성 출신의 무용가 황무봉은 외종조부인 천세봉에게 춤을 배웠는데, 천세봉은 김창후, 홍성락과 함께 고성오광대의 중시조로 불리는 3인중의 한사람이었어요. 천세봉의 전통춤이 황무봉 선생에게 전해져 한국창작무용의 선각자들을 키우고 무용교육의 중추세력을 양성한 것이었어요. 고성 오광대가 한국 무용계와 연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최초로 기록한 장본인이 되면서 한국문화재재단으로부터 <춤추는 농사꾼 이윤석>의 공동저자 요청을 받았어요. 사실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계속된 요청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기록을 위해서 무작정 이윤석 선생님이 계신 고성으로 떠났어요. 기록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는데요, 진주검무는 대형, 동작 등 정형화되어 있는 틀이 있지만 고성 오광대의 덧배기춤은 허튼춤, 즉흥춤이어서 동작이 달라지는 자유로운 춤이었거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춤의 박자별로 번호를 부여해서 달라지는 동작의 스케치를 했어요. 굿거리장단을 3분박 4박자, 총 열두 컷으로 나누어 흙냄새 짙게 배인 춤(사위)를 세밀하게 채보하여 실어야겠다 싶었죠. 또 일반인 독자들을 고려해서 중요한 동작들은 앞모습, 옆모습, 뒷모습 다양한 각도로 기록을 했고, 전문적인 단어보다는 쉬운 단어, 표현들을 많이 사용했어요. 세세하고 자세하게 성지혜 식으로 기록했지만, 이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된 결과물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한편으로는 앞으로 더욱이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와 결합하고 시도를 해봐야겠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번 경험은 많은 공부가 된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  박자 별로 스케치를 하여 고성 오광대의 동작을 기록했다. 박자에 따라 달라지는 각각의 동작에 번호를 부여해서 더욱 세세하게 대중들에게 보여주려 노력했다.

 

Q5. 진주검무는 전통 춤 중에서도 그 원형을 보전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전통을 지키는 것과 그것을 활용하고 대중화하는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하면서도 어찌 보면 결이 다르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수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춤은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전해지고 몸이라는 매개체로 전달하기 때문에 사람이 변하면 자연스레 변화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생각을 해요. 과거가 없는 현재가 없듯이 과거의 몸짓이 이어져오며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 또한 원형을 담고 있는 몸짓일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결국에는 원형을 기반으로 한 현대인들에게 향유할 수 있는 접점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이 전통 계승의 열쇠가 아닐까요. 변질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시대에 발맞춰 발전하고, 변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질이 아닌 전형(轉形)의 시대인 거죠. 원형을 고수하는 사람들과 전형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공존이 문화 전승에 있어서 최고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심에는 무형문화재 원형을 굳건히 지켜나가시는 진주검무 3대 예능보유자이신 유영희, 김태연 선생님처럼 중심을 지켜주시는 역할이 계시기에 이수자로서 기회가 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처럼 전통무를 기반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도 필요한 것이니까요. 원형과 현대적 재해석은 필히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019년 진주시융복합민속예술공연제작 지원사업 : 진주시 유네스코 공계 및 민속예술 창의도시 선정 기념 창작 공연

 

▲  진주시 유네스코 공예 및 민속예술 창의도시 선정 기념 창작 공연에서 진주검무 성지혜 이수자의 공연 모습

 

 

Q6. 중학생들과 진주검무를 기반으로 한 창작무를 만들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요즘에 전통화 현대적인 감성을 결합한 크로스오버가 큰 인기를 얻고 있고 더불어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실지 이수자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14년도와 15년도, 의미 없이 똑같이 교육을 하던 와중에 진주여중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15년도에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온 후에 중학생들에게 진주검무를 본 적이 있냐 물었던 적이 있어요. 한 반에 한 명도 채 되지 않더라고요. 이때 이수자로서의 사명감이 피어오르게 되고, 예술 강사로서의 명분도 뚜렷해졌던 것 같아요. 17년도에 여중생들과 모험을 하나 했는데요. 진주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되기 위한 발돋움으로 진주검무 동아리 발표공연이 있었는데 그때 디즈니의 모아나 OST에 맞춰서 검무를 췄던 거죠. 학생들에게 진주검무의 장단이 지루할 수도 있는데, 연습할 때 아이돌 노래 같은 걸 틀어주기 시작하면서 아이들과의 소통을 이룰 수 있었어요. 이런 전수 과정이 꽤 긍정적인 결과를 낸 것 같아요. 18년도 학생스포츠클럽 때도 개막공연 안무를 했고, 19년도 경상남도 생활체육대축전 개막 행사에서는 30명 남짓의 단체 창작 검무를 총연출 하신 유영희 선생님께 제의를 받아 안무 및 출연을 했거든요. 대중화를 위해서는 지루함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날치 밴드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잖아요. 그 다음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저 소리의 원형이 뭐지?’ 하고 판소리를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늘어가는 것처럼 이슈화되고 더 큰 저변확대, 대중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 2019년 10월 5일 제10회 진주-시안 ‘석류꽃의 봄’에서 진주여중 학생들과 무대를 성황리에 마친 뒤의 모습

 

 

Q7. 지금도 이수자님처럼 한국의 전통 보존과 계승의 주체인 이수자의 길을 꿈꾸고 있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이수자는 누구보다도 그 신념이 단단하고 사명감이 커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수자 선배로서 이수자에게 요구되는 역량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후배들이 새겨듣기를 바라며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이수자는 춤추는 성지혜의 일부일 뿐이에요. 저는 이수자 자체가 목표였다기보단, 춤이 좋아서 그 길을 계속 걷다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서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항상 정신적인 문화의 가치를 새기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정신적인 것들보다 물질적인 것들을 쫓기 시작하면 정신의 변질이 일어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신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가치의 크기는 엄청나다는 것을 유념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정책적으로도 이수자의 가치를 높이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이수자들만이 지원할 수 있는 공모 활동이 다양해졌으면 좋겠고, 다른 예술 분야 공모전들처럼 꾸준하게 개최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수자들만을 위한 공모전이 생기면 이수자를 꿈꾸지 않는 사람들도 이수자라는 의미 있는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제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텔링, 무용극 콘텐츠 개발 쪽 공모가 많아졌으면 하는데요. 우리 이수자분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대중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  한국문화재재단의 '청년 문화유산 기자단'이 진주검무 성지혜 이수자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는 전통문화의 창의적인 해석과 새로운 시도로 무형문화유산을 지켜나가는 젊은 전승자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함께 공감하고,  우리 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참 만남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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