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아름다움과 조상의 숨결을 느끼며

- 학연화대합설무(鶴蓮花臺合設舞) 김혜정 이수자 -

 입추가 지났어도 지속되는 무더위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8월 중순. 서울 강남구 삼성동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은 궁중정재(宮中呈才)인 학연화대합설무(鶴蓮花臺合設舞)를 재현하기 위한 연습으로 열기가 뜨겁다.

청아한 전통 정악인 영산회상의 장단에 맞춰

  청아하고 맑은 전통 정악(正樂)인 영산회상(靈山會相)의 도드리장단에 맞춰 펼쳐지는 고매한 학무(鶴舞)의 춤사위. 두 마리의 학이 가뿐하게 나는 듯하더니 서로 부리를 마주치는 동작으로 이어진다. 지당판(池塘板)으로 올라가 연통(蓮筒)을 쪼아대니 벌어진 연통 사이로 나타난 무동(舞童)들에 학이 놀라 뛰어나간다. 이어서 연화대무(蓮花臺舞)가 진행된다. 무동과 함께 죽간자(竹竿子) 두 사람이 좌우로 나가서고 무동들은 앞으로 또는 서로 마주 보며 돌기도 하면서 춤을 이어나간다. 

 ‘학무’와 ‘연화대무’를 하나로 엮어 미학적으로 구현

오전 연습을 마친 후 학의 탈을 벗고 이마에 흐르는 비지땀을 닦던 김혜정 학연화대합설무 이수자(이하 이수자)는 “학과 무동들의 춤을 각각 ‘학무’ ‘연화대무’로 칭하는데 둘을 연결하여 미학적으로 구현한 춤이 궁중정재의 진수인 학연화대합설무”라고 설명한다. 이수자는 “학무는 청렴과 장생을 상징하며 상생과 화합의 정신을 담았고연화대무는 나라의 어진 정치를 칭송하는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라며 말을 이었다. 1971년 1월 8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될 당시에는 학무(鶴舞)라 하였으나, 1993년 연화대무(鶴蓮花臺舞)를 더해 학연화대합설무로 이름을 고쳤다.현재 학연화대합설무의 기능보유자로 이흥구가 지정되어 있으며 그에게 사사한 전승자 손경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깨끗한 품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이수자는 해마다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 내 민속극장 ‘풍류’에서 진행되는 학연화대합설무 공연에서 주로 학춤을 선보였다. “동녀(童女)·협무(挾舞)·죽간자(竹竿子)·악사(樂士)·학(鶴)의 5가지 역할이 각각 쌍을 이뤄서 10명이 공연을 하는데 역할 중에서 가장 많이 했었던 ‘학’이 자신과 가장 잘 맞는 것 같다”라며 자신있게 말한다. 학은 예로부터 시대와 종교·이념과 상관없이 매우 신성시했던 동물이다. 학은 기품 있는 선비의 품성을 대표한다. 이수자가 학을 모방하는 춤사위를 펼치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포인트는 “공연을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학과 같이 깨끗한 품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바른 심성을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자는 “실제 다른 동물의 탈춤이 유희적인 성격이 강한 데 비해 학춤의 예술성은 단연 돋보인다”라며 학춤의 개성을 강조했다. 

 어우러진 아름다움의 극치인 ‘정재’의 매력에 빠져

원래 승무·살풀이·태평무를 즐겼던 이수자가 학연화대합설무에 눈을 뜨게 된 데에는 학연화대합설무의 전승자인 손경순 전 숭의여대 교수와 복미경 안무자의 영향이 컸다. 학연화대합설무의 전승교육사와 이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두 스승 곁에서 궁중정재의 맛과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궁중정재는 장엄하고 화려하면서도 모든 것이 절제된 가운데 우아함과 품위를 잃지 않고 있어요” 이수자가 정재무용에 빠져든 가장 큰 이유다. “같은 학춤이라도 동래학춤이 자유분방한 즉흥성과 개인적 멋이 강조되는 민속춤이라면 학연화대합설무에서의 학무와 같은 정재는 정중동(고요함 속에 움직임.靜中動)의 고혹적인 춤사위입니다” 이수자는 이를 두고 ‘어우러진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재차 표현 했다. 

  “고증을 통해 확인된 옛 방식을 토대로 이어져야”

이흥구 학연화대합설무 보유자는 현존하는 ‘궁중정재의 거장’이다. 이수자는 그를 “반세기 이상 정재의 재현에 힘써 오신 분”이라며 “악학궤범의 기록에 근거하여 당시의 원칙을 고수하려는 노력을 본받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흥구 보유자가 종종 연습실에 나와서 이수자의 춤동작을 지도할 때 매번 강조하는 부분은 ‘원칙에 충실한 노력’이라고 한다. 이수자는 연습과 공연을 반복하면서 어느덧 “전통문화예술은 ‘철저한 고증을 통해 확인된 옛 방식을 토대’로 이어져야 한다”라는 ‘춤에 대한 철학’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국가무형유산 전승 활동 지원사업에 감사”

(사)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는 해마다 전통문화 계승·발전사업을 벌이고 있는 기업의 문화재단이다. 지난해 신규 전승 지원자로 이흥구 학연화대합설무 보유자를선정하기도 했다. 현재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문화복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공익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국가유산진흥원은 2007년을 시작으로 (사)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와 기부 약정을 체결하여 국가무형유산 전승 활동을 꾸준히 지원해 오고 있다. 국가유산진흥원 백수정 홍보팀장은 “전승 보급 활동 및 활성화가 어려운 취약 종목을 후원 대상으로 선정한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국가유산진흥원은 안정적인 전승 기반 조성 및 우리 전통문화 계승·발전을 위한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수자는 이런 기업 메세나 활동에 대해 “문화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감사하다”라며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한 문화예술인의 노력과 전폭적인 기업 메세나 덕분에 오늘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학연화대합설무의 명맥을 잇는 것이 우선의 목표”

이수자는 현재 학연화대합설무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다. “청소년들에게 무형유산 교육과 체험을 통해 국가유산의 가치와 소중함을 인식시키고 싶다”라며 미래의 포부도 말했다. 전통을 지키려는 부단한 노력 이외에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도는 이수자만의 장점이다.

연습을 지켜보는 내내 이수자가 표현하는 춤가락에 마치 숨을 고르고 명상의 세계에 잦아드는 듯했다. 일상의 불필요한 잡념과 찌꺼기들이 씻겨 나간 기분이다.

김혜정 이수자와 같은 젊은 예술인들이 ‘선조들의 문화가 전해 내려온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려는 노력과 열정을 갖고 있는 한 전통의 명맥은 우리 곁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글. 사진 스카이데일리 이종원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라인